“SH공사가 주택임대관리 사업을 한다고요? 우리 민간 임대관리업체는 대체 뭘 먹고 살라는 겁니까. 결국 다 죽으라는 얘기밖에 안 되죠.” (A 민간 주택임대관리업체 대표)
서울시가 SH공사의 주택임대관리업 진출을 추진하면서 관련 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민간 임대주택 공급물량을 늘리기 위한 조치로 SH공사가 직접 임대관리에 나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 진출해 있는 민간 임대관리업체들은 공기업이 민간영역을 침범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갈등이 예상된다.
◇서울시, SH공사 위탁관리 추진 왜?
12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산하기관인 SH공사가 개인 임대사업자로부터 주택을 위탁받아 입주자 관리와 유지 보수를 대행하는 임대관리 사업을 추진 중이다.
SH공사가 임대주택 관리에 어려움을 느끼는 임대사업자들에게 위탁수수료를 받고 관리를 해주는 대신 세입자에게 주변 시세의 90% 수준으로 최대 10년간 임대하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민간 임대주택 2만호를 공급할 예정인데 이 중 1000호를 SH공사의 위탁관리를 통해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임대사업자들이 가장 많이 애로를 느끼는 부분이 임대관리의 전문성과 공실 위험”이라며 “오랜 기간 공공임대주택 관리를 하면서 노하우를 지니고 있는 SH공사를 통해 전문적인 관리·운영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차인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다”며 “공공임대 물량에 한계가 있는 만큼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통해 시장 안정화에도 이바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SH공사를 통해 임대관리 전문업체의 롤 모델도 제시한다는 목표다. 현재 100여 개의 민간 임대관리업체들이 시장에 진출해 있지만 대부분 규모가 영세한데다 전문성도 아직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SH공사와 경쟁을 통해 임대관리업체들이 건실하게 육성될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라며 “임대관리업 제도가 시행 초기인 만큼 SH공사가 틀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임대관리업체 “과다경쟁 유발도 우려”
임대관리업체들은 서울시의 이러한 정책이 민간 임대관리업체 육성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과 대치되고 제도의 근간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A 임대관리업체 대표는 “SH공사가 개인 임대사업자에게 위탁받아 다시 임대관리업체들에게 위탁하는 징검다리 역할이면 몰라도 직접 위탁 관리를 하게 되면 임대관리업체들은 전부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지도가 높은 SH공사에 집주인이나 임차인이 몰리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며 “애초에 SH공사가 할 거였으면, 왜 민간업체들에게 길을 열어줬는지 모르겠다.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현재 정부는 임대관리업체들에게 부동산중개업 겸용과 부가세 면제 등 규제를 완화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자본금 2억원에 전문인력 2명 이상(자기관리형 기준)’으로 규정된 임대관리업 등록 기준도 낮출 예정이다.
이러한 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 관리와 입주자 모집을 동시에 수행하는 대형 임대관리업체를 육성한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하지만 SH공사가 임대관리에 나서게 되면 민간 임대관리업체들이 시장을 빼앗겨 정부의 정책과 대치될 수 있다는 게 임대관리업체들의 주장이다.
B 임대관리업체 관계자는 “전국에서 임대관리를 맡길 만한 곳을 추려보면 서울과 수도권밖에 없는데 SH공사가 뛰어들면 과당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며 “결국 수수료 낮추기 경쟁에 들어갈 것이고 수익성이 나빠진 업체들은 퇴출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한쪽에서는 대형 임대관리업체를 육성하겠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공기관을 통해 롤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하니 상당히 혼란스럽다”며 “두 기관간 협의를 통한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주택임대관리업’이란 집주인(임대인) 대신 전문 임대관리업체가 세입자와 주택을 직접 관리하고 집주인에게 수수료와 임대료 일부를 받는 사업을 말한다. 시설물 관리를 포함한 공실과 임차료 관리를 맡는 ‘자기관리형’과 시설물 유지 관리 보수에 집중하는 ‘위탁관리형’으로 나뉜다. 올해 2월 제도가 시행됐고 등록업체는 109개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업체는 59개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