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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버블 경고등

2014. 03. 03   

 

가을 이사철이 끝난 뒤에도 전세가격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다. 이맘때면 계절적으로 비수기로 접어들어 전세가격이 안정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는 영 딴판이다. 집을 사지 않고 전세살이를 하려는 사람만 시장에 몰린데다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서 전세유통물량이 줄어서다. 이처럼 전세쏠림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전세가 비율이 급등하고 있다. 10월 현재 전국 아파트 전세가 비율은 65.9%, 서울은 60.1% 정도인데, 새 아파트는 거의 80%에 육박한다. 수도권에서 전세가 비율이 80%를 넘는 단지가 23만가구로 지난해 말에 비해 10배나 늘어났다. 문제는 전세보증금이 장기간 급등을 하다 보니 전세 버블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맡긴 보증금이 400조~500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 상당분의 보증금이 세입자의 자기돈이 아니라 은행돈이다. 과거에는 전세보증금은 순자산이었다. 그래서 내 집마련을 위한 밑천으로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환승역이자 징금다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대출(빚)이 잔뜩 들어있는 빈껍데기 자산이다. 월급을 모아 전세보증금을 마련할 길이 없으니 은행에 손을 내민 결과다. 그래서 전체 세입자가 갚아야 할 전세자금 대출금도 지난 6월말 60조원을 넘었다. 내년에 금리까지 오른다면 부담이 더 늘어 가계 부실이나 소비 침체의 또 다른 원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최근 몇 년 간 하우스 푸어가 우리 부동산시장의 불안요인이었다. 매매가격 급락에 따른 집 가진 사람들의 불행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렌드 푸어, 전세 푸어가 더 큰 문제다. 하우스 푸어와는 달리 전세가격 급등에 따른 집 없는 세입자들의 불행이다. 문제는 앞으로 전셋값이 더 오를 경우 세입자들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전세는 세입자들이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공간을 무료로 쓰는 개념이다. 공간을 쓰는 대가로 세입자는 이자를 받지 않는 채권자나 대부업자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전세로 사는 것을 안전자산 구매 행위나 최고의 재테크의 일환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미 전셋값이 높은 상태에서 추가적으로 더 올려줄 경우 자칫 부실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행위다. 실제로 지난해 수도권에서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 전세보증금 일부라도 떼인 세입자가 7800명에 달했다. 이른바 깡통전세 세입자로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도 9500~1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깡통전세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미리 대비를 하는 것이 좋다. 가령 전세가 비율이 70% 넘는 경우 전세보증금을 올려주기보다는 월세로 전환하거나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집주인 역시 빚을 보관하고 있는 채무자로서의 책무를 잘 지켜야 한다. 3~5년 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되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블논란이 일고 있는 전세가격이 앞으로 언제까지 올라갈 것인가. 사람들은 현재 상황이 미래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모멘텀 편향이나, 지속 편향이다. 전세가 장기적으로 소멸과정을 거친다고 하더라도 중단기적으로 굴곡이 있을 수 있다. 전세시장은 본질적으로 사금융의 성격을 갖고 있어 작은 수급의 변화만으로 요동을 치는 특성이 나타난다. 따라서 집주인들은 보증금으로 투자하기보다는 안전하게 보관하는 의무를 잘 지켜야 한다.

 

지금까지 전세제도는 세입자와 집주인간의 윈-윈 게임이었다. 집주인은 일종의 돈을 무료로 빌리고, 그 덕에 세입자도 싸게 공간을 얻어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전세제도는 서서히 종언을 고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과도적인 단계다. 세입자들의 전세 편애 속에 매물 품귀현상이 심해지면서 또 다른 전세 버블을 만들어내고 있다. 버블은 언젠가는 꺼지는 법이다. 갑작스런 전세 버블 붕괴에 따른 피해가 없도록 버블을 더 키우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금융당국의 전세버블에 대한 체계적인 모니터링과 충격을 완화하는 완충장치 마련도 서둘러야 할 때다.

 

박원갑/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부동산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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